fnctId=bbs,fnctNo=180 게시물 검색 검색하기 제목 작성자 6건, 현재페이지: 1/1 게시글 리스트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담아 미래혁신교육기금 1호 기부자가 된 조효제 교수 사회융합학부 조효제 교수가 미래혁신교육기금 1호 기부자로 1000만 원을 쾌척하였다. 조효제 교수는 1999년 가을부터 우리 대학과 인연을 맺었으며 2000년부터 사회학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 교수를 만나 기부의 의미와 학교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미래혁신교육기금의 1호 기부자가 되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기부를 결정했나요?어머니께서 작년 12월, 아흔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떻게 어머니를 추모할 수 있을지 생각하던 차에 학교에 기부자 클럽 아름다운 동행 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을 작게나마 표현하고 싶었습니다.어머니는 장남인 저와 남동생, 여동생까지 2남 1녀를 키우셨습니다. 시골에서 가난한 집안의 막내딸로 자라신 어머니는 공부에 열정이 있었지만 소학교 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3남매를 국민학교 6년 동안 모두 개근시킬 정도로 자식 교육에 열심이셨습니다. 어머니가 아픈 저를 업고 학교까지 데려다 주시면서 절대로 결석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제가 성공회대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가 참 기뻐하셨습니다. - 교수라는 길을 선택하셨을 때 어머님의 조언이 있었나요?어머니가 진로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없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살도록 해주시는 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은연중에 저도 어머니의 교육에 대한 갈망과 아쉬움에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졸업장이 없었지만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10년 이상 파킨슨병을 앓아 거동이 어려웠습니다. 눈도 잘 안 보이게 되면서 책 읽기가 어려워지자 굉장히 아쉬워하셨어요.저도 자식을 키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어머니의 마음이 점점 더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의 엄격한 양육 방식 때문에 간섭받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학교에 오시게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조금 늦게 공부를 시작했고 영국에서 유학했습니다. 귀국하고 현재 서울시 교육감이신 조희연 교수님의 제안으로 성공회대학교 시민사회복지대학원 NGO학과 (현 시민평화대학원)에서 강사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한 학기 뒤에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지금까지 인권의 사회학 이나 글로벌 사회학 같은 과목을 통해 학생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학교 생활에 여유가 있었고, 교직원이나 학생들과의 교류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점심시간에 여러 선생님들과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 앉아 학교 발전, 교육, 사회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요즘은 다들 바빠져서 그럴 여유가 많이 없어요. 그 점이 참 아쉽습니다. - 사회학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회학이 모든 학생이 교양 수업으로 한 번씩은 다 배우는 과목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회학을 통해 사회를 보는 눈을 넓힐 수 있어야 해요. 사회학을 조금만 공부해도 왜 빈부격차의 현실이 사라지지 않는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존재하는 사회문제의 뿌리가 무엇인지, 세계와 사회의 변화를 움직여 가는 힘이 무엇인지, 왜 아직도 남녀 임금 격차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지 등의 문제에 대해 넓은 시야가 열립니다. 사회학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학생과 시민들이 많아질수록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사회와 세계의 불평등한 구조, 시스템, 관행을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지적 역량이 커질 수 있습니다. - 성공회대학교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학교 외부에서 논문 심사나 발표 대회 같은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많습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넓고 깊은 학생들이 정말 드물다고 느낍니다. 아마 스스로는 그런 점을 잘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확실히 그런 점이 드러납니다. 우리 학생들이 성공회대학교에서 잘 배우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체 사회 시스템과 구조를 읽어내고 역사적인 흐름을 파악하면서 현재를 분석하는 능력은 우리 학생들의 뛰어난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우리 학교의 또 다른 강점은 좋은 선생님들이 많다는 점이에요. 다들 진심으로 우리 사회를 걱정하고, 학생들을 잘 이끌어주는 분들입니다. 논문이나 책으로만 접했던 지식인, 학자들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신영복 교수님, 김수행 교수님 같은 분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뵐 수 있었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학생들이 성공회대학교를 다니면서 접하는 우리의 학풍과 전통은 졸업 후에도 평생 자기 자부심의 원천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 이번 기부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대학 시절은 금방 지나갑니다. 학생들은 시간상 비교의 기준이 적어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좋은 시간인지 잘 모를 겁니다. 가장 중요한 건 대학 시절을 지적으로 최대한 성장하는 시기로 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점 올리는 공부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책을 읽고 다른 친구들과 토론도 하고 새로운 생각 앞에 자기를 노출시키면서, 열린 정신의 지성인으로 자라는 시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본인이 가졌던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깨려고 노력하면서 성장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저는 젊었을 때 독서 욕심이 많았는데 그때 읽었던 책이 제일 큰 자산으로 남는 것 같아요. 도서관의 어느 서가에 어떤 책이 있는지 줄줄 외울 정도로 독서에 열정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내내 조효제 교수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 학교 구성원을 향한 그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학교 문화가 다시금 이어지길 바라본다.대학발전실 홍보기자 유수빈- 우리 대학에서는 조효제 교수의 미래혁신교육기금 기부에 감사의 마음을 담기 위해 피츠버그홀 B-037 좌석에 감사 명패를 부착하였습니다. 감사 명패에는 조효제 교수의 희망에 따라 "사랑하는 어머니 남차생 여사를 기억하며"가 새겨졌습니다. No. 6 작성자 대학발전실 조회수 1190 등록일 2023.11.21 0 기부가 만든 변화 '교회음악과정 실습실' 신학대학원 교회음악 과정 실습실이 기부자들의 도움으로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로 오픈했다. 기존에 피츠버그홀 지하에 연습실이 11개가 있었으나, 1명 이상 들어가기가 힘들 정도로 방 크기가 작았다. 또한 에어컨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여름에는 곰팡이 냄새와 찌는듯한 더위로 레슨을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이번 리모델링을 통해 연습실의 숫자는 8개로 줄이되 크기를 넓게 하여 공간적으로 여유롭게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각 방에는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하여 쾌적한 환경에서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최고급 흡음재와 방음 출입문을 달아 옆방의 소리도 차단할 정도로 완벽한 방음 시설을 했다. 신학대학원 교회음악 과정 주임교수인 차피득 신부를 만나 새로운 실습실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우리나라 어느 음악대학교 연습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학생이 교회음악대학원에 지원하고 더욱더 학생들의 연주실력이 향상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오픈한 교회음악 과정 실습실은 교회음악 과정 발전을 기원하는 분들의 기부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하였다. 기부금 모금은 대학발전실과 공동으로 진행하였다. 기부금 모금은 팜플렛을 만들어 교회음악과 동문과 성공회 교회를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했다. 불가능할 것 같던 모금 운동은 작은 기적으로 이어졌다. 모금을 시작하자마자 교회음악과 동문이시자 오페라단 느티 의 이명희 단장의 3천만 원을 시작으로 오페라단 느티 의 초대 단장이었던 김영환 교인이 (학교법인 성공회대학교 前이사) 1천만 원을 기부했다. 그리고 성공회 안양교회 교인들이 7백만 원과 피아노를 봉헌해 주었다. 그 외에도 베드로학교 선생님과 교회음악과에 출강하는 교수님을 비롯해 많은 성공회 교인들이 기부해 주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이 정말 많은 분의 도움으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간절한 기도와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습실 리모델링 변화에 즈음하여 신학대학원 교회음악 석사과정에도 작은 변화가 있었다. 기존에는 오르간과 지휘,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만 모집하였으나 실습실이 완성되면서 2022학년도 1학기에는 기악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모집하였다. 그 결과 2022년 대학원 과정에서 제일 많은 신입생이 모집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교회음악뿐만 아니라 실용음악으로까지 모집 분야를 확대할 계획이다. 실습실이 좋아지니 이를 기반으로 다시 교육 내용이 확장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음악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습니다. 다양한 음악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수요를 파악해 더욱더 전공의 수를 확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지금은 클래식 중심으로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지만 대학원의 규모가 커지고 활성화되면 영화와 뮤지컬 음악을 중심으로 한 실용음악 과정까지 모집할 계획입니다 차피득 신부는 교회음악 발전을 위해 기부해 주신 기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학생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연습할 수 있는 연습실과 강의실을 리모델링 할 수 있게 후원해 주신 모든 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음악을 통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바꾸어나가는 역할을 다하는 교회음악과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 교회음악과는 지금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였다. 새로운 변화를 시작한 성공회대학교 교회음악 과정이 한국 사회는 물론 세계적인 교회음악 과정으로 자리하기를 기대해 본다.--------------------------------------------------신학대학원 교회음악과정을 후원해 주신 분들 강태진 고은주 김기석 김선정법무사법인 김수진 김영환 김은영 박경조박수아 박태식 방애심 안양교회 오경열 원학연 유광우 이대성 이선경지성학 한민호 홍미경 ㈜명신종합건설(대표 민병길) ㈜지케이월드(대표 이명희) No. 5 작성자 대학발전실 조회수 2503 등록일 2022.09.23 0 한신대학교 국문학과 김용희 명예교수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다 보면 길은 자연스럽게 열립니다" 한신대학교 김용희 교수가 성공회대학교에 발전기금 1천만 원을 기부하고 성공회대학교 기부자클럽 아름다운 동행 에 가입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는 어느 봄날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김용희 교수를 만났다. 김용희 교수님 안녕하세요. 2000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 정기적으로 기부를 해오셨고, 최근에는 1천만 원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어떤 인연으로 성공회대학교에 기부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사실 성공회 세례교인입니다. 70년대에 고려대학교 영문과 교수였던 돌아가신 김진만 교수님이 이화여대 문학 세미나에 오셔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성공회 교인이었던 김진만 교수님을 따라서 성공회 동대문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김진만 교수님이 세례를 받으라고 하셔서 세례도 받았습니다. 그 뒤 교회를 매주 나가지는 못했지만, 성공회와 성공회대학교에는 각별한 애정이 있습니다. 한신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임용되어서 오랜 기간 재직하셨습니다. 어떻게 국문학을 전공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계획을 세우고 국문과 교수를 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국문과 다니던 친구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권유해서 국문과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국문과가 무엇을 배우는 곳인지 잘 몰랐습니다. 국문과가 문예창작학과하고는 달라서 글쓰기를 배우는 학과는 아니었습니다. 대학 때 소설을 쓰기는 했지만, 작가로서의 재능에 한계를 느끼고 국문학 공부를 더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석사와 박사과정에 들어갔고 학위를 취득한 후에 대학에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가르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주어진 과제를 열심히 하다 보니까 가르치는 사람으로 정년퇴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관심 있는 분야에 인내심을 갖고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미리 계획하고 선택한 길은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이 길이 운명처럼 다가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시는 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한신대학교에서 국문학과 학과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국문학과 학생이 총학생회장을 하고 있었는데 시위과정에서 학교 기물을 파손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학과장으로 교무위원회에 가서 의견을 개진하게 되었습니다. 퇴학을 포함한 중징계가 논의되었는데 제가 끝까지 반대해서 중징계는 면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학과장의 마음보다는 엄마의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도 쓰고 수필집도 쓰고 하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에 재능이 있으셨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전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처음에는 사투리가 섞인 말투 때문에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고는 했습니다. 학교생활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4학년을 마치고 5학년으로 올라갔습니다. 숙제로 방학 동안 일기를 썼는데 담임 선생님이 전체 학생 앞에서 제 일기를 읽어주면서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글쓰기에 취미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고등학교 때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나서 죽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국어 시간에 삶과 죽음에 대한 제 생각을 글로 써서 냈더니, 국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제가 쓴 글을 비웃었습니다. 그때 굉장한 모욕감을 느꼈고, 글 쓰는데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다가 대학에 와서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였던 돌아가신 이어령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제 작품을 읽어주셨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다시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는 자신을 갖게 되었습니다.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재능이 있는 학생이 되기도 했고, 재능이 없는 학생이 되기도 한 것이죠.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가 한 사람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 것입니다.소설은 등록금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때 학보사에서 1년마다 소설 공모를 했는데 여기에 당선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해 이화여자대학교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소설을 공모했는데 기성 문인을 모두 포함한 공모전에서 제가 당선되었습니다. 아마 소설을 쓰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서 제가 당선된 것 같습니다. 정년 퇴임 후에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 주로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지금 농사를 짓고 있어서 한가하지는 않습니다. 밭이 300평 정도 되는데 취미를 넘어 굉장한 노동이 필요합니다. 농사를 지은 기간은 한 10년 정도 됩니다. 농사짓는 곳이 집에서 27km 떨어져 있습니다. 3월 말부터 김장철까지 스물일곱 번 정도 밭에 가고 있습니다. 고된 노동이지만 제가 농사짓는 일을 무척 좋아합니다. 가르치는 일과 농사는 생명을 키운다는 측면에서 매우 비슷합니다. 농산물을 주변 이웃과 나누면서 이웃과 소통하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거쳐오신 교수님이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이전보다 경쟁이 심하고 규격화된 사회지만 길을 찾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미리 갈 길을 계획하고 걸어온 것은 아닙니다. 인생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행동하는데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에 주어진 과제를 열심히 수행하다 보면 길은 자연스럽게 열립니다. 끝으로 성공회대학교가 어떤 대학이 됐으면 하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공회대학교는 처음 시작은 신학교육으로 출발을 했고 지금은 종합대학이 되었습니다. 성공회대학교는 작은 규모지만 인문학에 강하다는 특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 교육이 인문학보다는 취업 위주의 교육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다른 대학이 실용 위주의 학문을 추구해도 성공회대학교는 인문학에 대한 강점을 계속 살려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내내 삶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함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김용희 교수는 지금 동학 농민운동의 3대 지도자 중 한 명인 김계남을 소재로 한 소설을 준비 중이다. 그의 식지 않는 열정의 결과물을 기대해 본다. No. 4 작성자 대학발전실 조회수 2639 등록일 2022.08.09 0 사회과학부 박준성, 영어학과 김혜신 동문 인생에는 실패란 없다. 성공과 경험만이 있을 뿐이다 사회과학부 2006학번 박준성 동문과 영어학과 2004학번 김혜신 동문은 2017년 1월부터 성공회대학교에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고 있다. 동문이면서 부부인 두 사람의 인터뷰를 진행했다.먼저 두 분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박준성 안녕하세요. 사회과학부 06학번 박준성입니다. 커뮤니케이션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회사에서 정부 부처 광고/홍보 캠페인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TV나 언론에서 보는 보건복지부의 금연 광고 국방부의 6.25 전사자 유해 발굴사업 홍보 환경부의 일회용품 줄이기 캠페인 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김혜신 안녕하세요. 04학번 김혜신입니다. 학창 시절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성공회대학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책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교수님들의 수업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성공회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영어학과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선택했습니다. 2학년 때 일본에 교환유학을 간 것을 계기로 일어일본학과를 복수전공 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영어나 일본어를 사용하여 국제회의 석상에서 일하는 전문 통역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통번역학과를 졸업하고 영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통번역사로 열심히 일하며 꿈을 펼치다 지금은 유치원에 막 입학한 에너지 넘치는 아들과 함께 매일 행복한 육아 전쟁을 치르는 중입니다. 성공회대학교에 기부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시겠어요? 감사하게도 최근에 부부 명의로 증액도 해주셨습니다. 기부금을 증액하게 된 계기도 부탁드립니다.박준성 우연히 학교 홍보물을 보다 일만동행 이라는 기부캠페인을 보고 항상 학교가 잘되야 너희도 잘된다 는 부모님의 말씀이 떠올라 작게나마 기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김혜신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성공회대학교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하나의 굵은 뿌리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학 생활 때 했던 많은 경험이 그전에는 생각해 보지도 못한 많은 일을 알게 해주었고, 또 많은 일을 도전하게 해주었습니다. 모교(母校)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니 학교에 대한 소식을 접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지금의 남편과 연애하면서 가끔 방문한 모교는 참 정답고 그리운 곳이었습니다. 남편이 결혼 5주년을 맞이해서 우리 두 사람의 이름으로 같이 기부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을 때 남편이 저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두 분은 어떤 학생이셨는지, 또 두 분이 어떻게 만나셨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두 분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박준성 저는 사진동아리 아이리스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저희 부부가 만난 것도 사진동아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제가 사진동아리 부회장을 하고 있을 때 우연히 학교에서 주최하는 국제행사에 사진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났습니다. 아내는 그때 영어통역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알고 지낸 지 정확히 10년 만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김혜신 조병은 교수님께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제로 국제포럼을 학교에서 주최하게 되었다면서 통역 봉사를 해 보면 어떻겠냐고 추천해 주셨습니다. 자연스럽게 각각 다른 역할로 오게 된 봉사자들과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키가 큰 남자아이를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지금의 남편입니다. 초면부터 누나는 왜 이렇게 키가 작냐며 장난스럽게 놀려대서 긴장도 빨리 풀리고 즐겁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도 5분 거리로 아주 가까워서 한강을 같이 산책하고는 했습니다. 남편의 서글서글한 성격 덕분에 금세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친한 누나 동생 사이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만난 지 10년 만에 결혼했다는 사실은 저도 지금 알았습니다.두 분이 앞으로 소망하는 개인적인 꿈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박준성 올해로 일을 시작한 지 10년째가 되었습니다. 외부 교육도 나가고 컨설팅을 하면서 다양한 후배들을 만나지만 아직 학교 후배는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학교 후배들에게 제가 가진 것을 더 많이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김혜신 예전에 일본에서 재일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습니다. 이 경험을 살려 한국에 있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한국의 문화,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어 왔습니다. 언젠간 이 일이 실현될 수 있길 바랍니다. 지금 재학 중인 후배들에게 대학 다닐 때 꼭 경험해 봤으면 하는 것이 있을까요.박준성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많은 경험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신입 직원이 들어오면 항상 연애를 열심히 하라고 조언합니다. 후배들이 연애도 하고, 여행도 하고, 술도 많이 마셔보고 그것이 무엇이든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김혜신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인생에는 실패란 없다. 성공과 경험만이 있을 뿐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 해봐도 되는 경험이 있다고 하지만 저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정답에 자기를 맞춰가지 말고 자기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세상에 정면으로 부딪쳐 보는 다양한 경험을 해 보면 좋겠습니다. 어떤 경험이든 그것은 여러분 본인의 것이고, 그 경험을 통해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면 좋겠습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 젊은이의 특권이지 않을까요? 끝으로 성공회대학교가 어떤 대학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성공회대학교에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세요.박준성 성공회대학교는 성공회대학교다웠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이 취업사관학교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김혜신 저 역시 남편의 말에 동감합니다. 사람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인문학적 소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개인이 비판적인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기르고, 더 나아가 다양한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소수자와 공정의 문제들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이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내가 문과인지 이과인지와 상관없이 우리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적 소양은 개인이 단시간에 쌓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니고 다양한 시각과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차곡차곡 쌓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대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현실적인 난관들이 많이 있겠지만 성공회대학교가 본래 가지고 있는 색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졸업생의 일원으로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저는 성공회대학교의 졸업생인 것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인터뷰를 통해 두 사람에게 성공회대학교 동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이 요구하는 정답에 맞추기보다 자신들만의 정답을 만들어 가는 두 사람의 동행을 응원해 본다. No. 3 작성자 대학발전실 조회수 2666 등록일 2022.08.03 0 시각장애인 기부자 신정자 데레사님 기부를 하면 자신이 행복해집니다 시각장애인 기독교인 신정자(세례명 데레사)님이 성공회대학교에 성공회 성직자 양성을 위한 장학금을 4년간 2천4백만원 약정하고, 첫 해 6백만 원을 기부했다. 신정자 님은 1급 시각장애인으로 매월 정부에서 지급하는 장애인연금을 저축하여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그를 만나 기부를 결심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성공회대학교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기부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제가 성공회 서창교회를 다녔습니다. 당시 서창교회 신부님이었던 원성희 신부님이 돌아가신 제 남편이 암투병을 하는 동안 저희에게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신부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기도하다가 마침 오랫동안 안되었던 시각장애인 1급으로 인정되어 장애연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를 모아서 좋은 성직자를 양성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성공회대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시각장애를 겪고 계십니다. 후천적으로 시각장애인이 되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시력을 잃게 되셨고, 장애를 받아들이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2008년 어느 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눈이 침침해졌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황반변성 진단을 받았습니다. 눈 상태가 수술도 불가능했습니다. 점점 더 볼 수 없게 된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울증도 왔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했더니 기적처럼 처음보다 시력이 좋아졌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쁜 일이 생겨도 지나가는 것입니다. 감사하면서 기도하면 나쁜 일 다음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생깁니다. 저는 시력만 잃었을 뿐이지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성공회대학교 장학금 기부 이전에도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는 사업, 제소자를 위한 재활사업, 어린이들을 위한 안과 수술을 위해서도 기부해 오셨습니다. 앞으로 꿈이 있으실까요?기부를 하면 정말 행복합니다. 이건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입니다. 꿈이 있다면 어려운 사람을 지원하는 기부재단을 설립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사람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지팡이를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지금은 불가능한 꿈이지만 기도를 열심히 하면 하느님이 들어주실 것입니다.성공회대학교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부탁드립니다.돈이 중요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돈이 중요하다고 돈의 노예가 되면 안됩니다. 돈만 좇아 다니지 말고 돈을 어떻게 의미 있게 쓸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도 없는 시각장애인이 기부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놀랍니다. 하느님 뜻에 맞게 쓰면, 쓸수록 채워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성공회대학교에 바라는 바를 물었다. 그저 기도만 해달라고 하였다. 그는 시력을 잃었으나 누구보다 세상을 통찰하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도해 본다. No. 2 작성자 대학발전실 조회수 2582 등록일 2022.08.03 0 삼성서울병원 응급의료학과 송근정 교수와 그의 아버지 송태원 님 아버지가 오랫동안 봉사한 대학에 기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의료학과 송근정(57) 교수는 아버지가 자원봉사를 하던 성공회대학교에 장애학생 장학금과 장애학생을 위한 시설개선기금으로 5년간 3천만 원을 기부했다. 그의 아버지 송태원(84) 씨는 대한성공회 출판부에서 40년간 근무하다 퇴직 후 성공회대 중앙도서관 내 성공회역사자료관에서 17년간 자원봉사를 하고 지난해 은퇴했다. 두 사람을 만나 성공회대학교에 기부를 하게된 동기를 물었다. 어떻게 기부를 하게 되었는지 그 동기가 궁금합니다. 따님이 제안을 먼저 한 건가요? 근정 5년 전에 어버지 생일을 맞아 무엇을 해드릴까 고민하다가 아버지 생일선물로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태원 근정이는 한 번 결심하면 거두지 않고 웬만하면 저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아버지가 찬성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근정이가 결혼한 후에 저에게 용돈을 주겠다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제가 의견을 굽힐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바로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한테 성공회대학교에 갔다 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알고 보니 대학에 기부금을 약정하고 왔습니다. 저는 그저 알겠다고만 했습니다. 사실 저도 속으로는 좋았습니다. 기부할 곳이 많은데 굳이 성공회대학교를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리고 기부하기를 잘했다고 느꼈을 때가 있을까요? 근정 성공회대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아버지가 오랫동안 대한성공회 출판부에서 일을 했고 정년퇴직 후에는 성공회대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이유가 컸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저의 기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 학생에게 장학금에 대한 감사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내가 기부한 돈이 원하는 사람에게 잘 쓰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공회대학교가 어떤 대학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근정 성공회대학교는 다양성이 존중되고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편견을 갖지 않는 대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회대학교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대학으로 계속 발전했으면 합니다. 태원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 많은 대학이 되었으면 합니다. 도서관이 학생들로 가득 찬 모습을 시험 때 뿐만 아니라 항상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웃음) 청년들이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태원 희망이 있으면 절망의 끝이 있고 희망이 없으면 절망의 끝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도 반드시 끝은 있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합니다. 근정 20대가 안정적이지 않은 세대인 것은 맞습니다. 결정된 것이 없으니 미래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자기가 이루어 내는 작은 성취가 본인의 미래를 만들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일 것입니다. 오늘을 충실히 사는 것이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입니다. 끝으로 코로나로 지쳐있는 교직원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근정 코로나로 인한 생활의 변화는 처음 겪어 보는 것입니다. 전쟁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온 국민이 처음 맞이하는 생활의 변화에 당황했습니다. 1년 넘게 모두가 고생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도 결국 해결이 될 것이고 해결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를 해결하고자 했던 노력과 경험이 우리 안에 쌓여서 결국 우리에게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태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성공회대 학생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자료관이 중앙도서관 내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서관 열람실에 있는 학생들을 보게 됩니다. 요즘 학생들은 공부 외에도 사회문제나 다른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의 가장 기본적인 할 일은 공부라는 것을 기억하고 무엇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되길 바랍니다. No. 1 작성자 대학발전실 조회수 2656 등록일 2022.07.18 0 처음 11 1 끝